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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덜 씻고, 난간에 기대고 — 아내의 한숨

FaTrio 2026. 6. 12. 07:00
📓 기록하는 아빠의 이야기

질문을 기록하고, 순간을 쌓아 삶의 밀도를 높입니다.

🧵 큐이의 기록 — 위생과 안전, 두 집의 간격

 
RECORD 01

화가 아니라, 거슬림

기록 메모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면, 상대가 화나는 지점보다 거슬려 하는 지점이 훨씬 자주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두 집의 기본값이 부딪히면서어느 한쪽에 맞춰지거나새로 합의되거나.

안녕하세요, 큐이입니다.

화는 크고 선명해요. 거슬림은 작고 잔잔해요.

 

말로 꺼내기엔 애매하고, 안 꺼내자니 계속 남아 있는 — 그런 영역이에요.

오늘은 제 쪽에서 아내를 거슬리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크게 두 축이에요. 위생과 안전.

 

이건 결국, 제가 자라온 집과 아내가 자라온 집이 서로 다른 기본값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저희 집은 아들만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위생이나 안전에 대한 감각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이었어요.

솔직히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집에 들어와서 바로 손을 씻지 않는 날도 많았고, 수건을 며칠씩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희 집 안에서는 그게 "기본"이었거든요.

지금도 저는 이게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집마다 문화가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결혼을 하면, 한 집의 기본값만 그대로 유지되는 일은 없어요.

 

── ✦ ──

 

RECORD 02

손을 덜 씻는 남자

예전의 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을 씻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한 번 앉아본 다음에야 손을 씻으러 갑니다.

 

수건도, 한 번 쓴 수건을 바로 교체하는 편은 아니었고요.

아내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이 부분은 꽤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문을 열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수건도 정해진 주기에 따라 교체해요.

 

거의 제2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도 가끔 — 정말 가끔 — 옛날의 제가 나옵니다.

 

피곤하거나, 잠깐 들렀다 나가는 상황일 때요.

 

손 씻는 걸 건너뛰고 물 한 잔 따라 마시거나, 잠깐 아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아내는 이럴 때 보통 직접 말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얼굴에 살짝 표시가 납니다.

 

잠깐 동작이 멈칫하거나, 시선이 제 손끝에 머물거나.

 

그러면 제가 눈치채고 슬그머니 화장실로 가는 그림이 나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 '굳이 이렇게까지?' 하고 느낀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깨끗하면 좋지만, 과하면 피곤한 지점이 저한테는 분명히 있거든요.

 

근데 이건 제 기준이고, 아내 기준에서는 그게 기본선이에요.

맞다/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시작점이 다른 것.

 

그리고 지금 와서 보면, 바뀐 쪽이 건강한 방향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게 살짝 억울할 뿐이에요.

 

── ✦ ──

 

RECORD 03

한 냄비에서 먹던 남자

위생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솔직하게 꺼내볼게요.

저희 집 식탁은, 음식이 좀 섞이는 편이었어요.

찌개를 가운데 두고 각자 숟가락으로 떠먹었고, 반찬도 공용 젓가락 없이 그대로 집어 먹었어요.

반찬이 남으면 며칠씩 냉장고에 두고 먹었고, 상태가 괜찮아 보이면 일주일이 넘어도 먹곤 했습니다.

그게 제 집 식탁의 기본값이었어요.

결정적으로, 저희 가족 중 누구도 음식으로 크게 탈이 난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정도는 괜찮다"는 감각을 몸에 새긴 채 컸어요.

처가는 달랐다는 걸 결혼하고 나서 알았어요.

 

아내의 가족은 음식으로 탈을 크게 본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덜어 먹는 게 기본이고, 반찬의 자체 소비기한도 꽤 짧게 두는 편이에요.

같은 음식을 두고, 우리는 서로 다른 확률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평생 탈 안 났던" 쪽에서 보고, 아내는 "여러 번 탈 났던" 쪽에서 보는 거죠.

덜어 먹는 부분은, 결혼 초에 저도 어색했지만 지금은 거의 맞춰졌어요.

 

가능하면 공용 숟가락을 쓰고, 각자 앞접시에 담아서 먹습니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아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이니까요.

소비기한은 — 솔직히 아직도 가끔 논쟁합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두고 제가 "괜찮아 보이는데?" 하면, 아내는 "언제 한 건데?" 하고 되물어요.

제 기준으로는 멀쩡한데, 아내 기준으로는 이미 넘어간 상태인 것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는 속으로 작게 '굳이 이렇게까지?'를 또 꺼냅니다.

이것도 결국 확률의 문제이고, 그 확률을 세팅한 건 각자의 집에서 살면서 본 장면들이에요.

 

제가 본 장면: 어떤 반찬도 큰 탈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

 

아내가 본 장면: 집안 누군가가 음식으로 호되게 앓았던 것.

기록 메모

어느 쪽이 더 맞다, 라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영역이에요.

 

── ✦ ──

 

RECORD 04

난간에 기대는 남자

두 번째는 안전입니다.

저는 난간을 잘 믿는 편이었어요.

 

복도나 계단, 전망대 같은 곳에서 — 별 생각 없이 난간에 기대거나, 손으로 체중을 싣곤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래 왔고, 난간이 빠지거나 무너진 경험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였어요.

 

벽에 등을 기대거나, 버튼 옆 패널에 손을 대거나, 문 앞에 바짝 붙어 서 있거나.

 

제 입장에선 그냥 익숙한 자세였습니다.

아내는 이걸 많이 싫어합니다.

 

특히 아이가 생긴 뒤로는 더요.

 

아이가 엘리베이터 문이나 벽에 손을 대는 것도 아내는 절대 허용하지 않아요.

 

문 틈에 손이 끼일 수 있고, 갑자기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로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어요.

 

난간은 실제로 떨어질 수 있고, 엘리베이터 사고 뉴스도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한 번도 문제가 없었던 익숙한 동작을, 있을 수 있는 사고의 가능성 때문에 전부 조정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제 안에서 완전히 해소된 적은 없어요.

물론 아이 앞에서는 저도 기대지 않고, 손을 대지 않습니다.

 

아이가 보고 배우니까요.

 

근데 저 혼자일 때는 — 가끔 예전 자세가 나옵니다.

 

난간에 무게를 싣고, 엘리베이터 벽에 어깨를 기대고.

아내가 그걸 봤을 때의 표정이 있어요.

 

화난 건 아니고, 한숨 직전의 표정.

 

'또 그러고 있네' 정도의.

 

── ✦ ──

 

RECORD 05

시작점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

세 이야기를 늘어놓고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아내가 보는 건 "있을 수 있는 위험" 이에요.

 

저는 그걸 "거의 없었던 위험" 으로 보고요.

같은 행동을 두고 서로 다른 확률로 계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확률을 계산하는 기준은 — 각자 자라온 집에서 어떤 장면을 보고 자랐는가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딸이 있는 집에서 자란 사람과, 아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 사람.

그 차이가 위생과 안전의 기본값을 다르게 세팅해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혼 생활의 적잖은 부분은, 결국 서로의 기본값을 조금씩 옮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쪽이 이겼다 진 게 아니라, 둘 다 원래 자리에서 살짝 움직여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는.

저의 경우, 위생과 안전 쪽으로는 제가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 게 대체로 맞다고 인정해요.

 

건강과 직결된 영역이니까요.

"라는 문장은 제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요. 그 문장이 남아 있는 동안, 저는 가끔 옛날의 저로 돌아가고, 아내는 그걸 보고 짧게 한숨을 쉽니다.

그게 화가 아니라 거슬림의 정체인 것 같아요.

 

크게 잘못한 건 아닌데, 서로가 보고 있는 그림이 잠깐 어긋나는 순간.

 

── ✦ ──

 

RECORD 06

결국 아이가 본다

요즘은 이 기본값이라는 걸 더 자주 생각하게 돼요.

 

아이 때문입니다.

아이는 저의 손을, 저의 자세를, 저의 난간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흡수해요.

 

제가 문 열고 바로 손을 씻지 않으면, 아이도 그 순서를 배웁니다.

 

제가 난간에 기대면, 아이도 따라 기대요.

그래서 아이가 보는 쪽이, 결국 이 집의 새 기본값이 됩니다.

 

제 원래 집의 기본값도 아니고, 아내의 원래 집의 기본값도 아닌 — 둘이 같이 합의해서 정한 값.

완벽하게는 안 돼요.

 

오늘도 분명히 한 번쯤은 옛날의 제가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도 — 같은 일로 아내가 두 번째, 세 번째 한숨을 쉴 필요가 없도록.

 

제 쪽에서 조금 더 움직여보려고 합니다.

가끔 억울함을 품고서, 그래도 움직이는 것.

 

결혼이라는 게 그런 거라는 걸, 요즘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아이 앞에서는 맞추면서, 혼자 있을 때는 놓아버리는 습관 — 혹시 있으신가요?

🧵 질문을 기록하고, 순간을 쌓아 삶의 밀도를 높입니다. 큐이.

오늘의 기록
그런데 제 쪽에서는 또 '굳이 이렇게까지?
다만 움직이면서도 — "굳이 이렇게까지?
여러분은 자라온 집의 기본값과 배우자 집의 기본값이 가장 크게 부딪힌 영역이 어디였나요?
결국 한쪽으로 맞춰진 게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많이 움직이셨나요?
답을 적어도 좋고, 마음속으로만 떠올려도 괜찮아요.

큐이의 기록 메모

질문을 기록하고,
순간을 쌓아 삶의 밀도를 높입니다.

기록하는 아빠 '큐이'

질문과 기록으로 순간의 의미를 오래 남기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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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빠가 되어가는 사람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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