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기록하고, 순간을 쌓아 삶의 밀도를 높입니다.
이번 주제는 조건이 선명했어요.
많은 세월 중에 딱 다섯 살, 많은 날 중에 딱 크리스마스 선물.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해봤습니다.
다섯 살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크리스마스는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 기억 속 다섯 살은 유독 단편적이었어요.
여섯, 일곱 살쯤 되면 내가 속했던 환경이랑 에피소드가 드문드문이라도 남아 있는데,
다섯 살은 그게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만큼 순수했던 시절이 아닐까.
말은 제법 또박또박 해도, 마음은 아직 세상 전체에 열려 있는 시절.
“왜?”가 많고, “해볼래!”가 더 많은 시절.
그때 받는 선물은 물건이라기보다, 그 시절을 통째로 감싸주는 ‘기억의 배경’이 될 것 같았어요.

딸이 먼저 고를 것 같은 선물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공기
저는 성인이 되고 나서는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어요.
그런데 어릴 때를 떠올리면 확실히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
이 세 날은 “이 정도면 나도 선물 받을 자격 있지 않나?” 하고
괜히 기대해볼 수 있던 날이었죠.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 연말이에요.
추운 공기 속에서 받는 선물은 이상하게도 더 따뜻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딸을 떠올리면, 아마 이런 것들을 먼저 찾을지도 모르겠어요.
작은 주방놀이, 인형, 예쁜 소품들, 역할놀이 같은 것들요.
손에 쥐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꾸미고 정리하는 것, 내 세계를 만드는 것들.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 선물들”도 충분히 좋지만,

📌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한 번쯤은 조금 더 길게 남는 선물을 주고 싶다고요.
── ✦ ──
그래서 내가 고른 선물은 ‘악기’였다
솔직히 말하면, 다섯 살이 된 우리 딸이 그때 어떤 취향을 갖고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스테레오 타입으로 상상해보면…
공주나 드레스, 노래, 춤, 역할놀이 같은 쪽으로 마음이 더 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취향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르는 선물이라면,
저는 오히려 취향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선물을 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떠오른 게 악기였어요.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것들요.
다섯 살 아이들은 이미 손가락도 제법 섬세하게 쓰고,
리듬에도 반응하고, 소리에 따라 기분이 바뀌기도 하잖아요.
무엇보다 악기는 연습할수록 변합니다.
처음엔 어설픈 소리인데, 시간이랑 반복이 쌓이면
점점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잖아요.
그 과정이 다섯 살 딸이 자라나는 과정이랑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어느 날 문득 놀랄 만큼 섬세해지고,
어느 날은 갑자기 “아빠, 이거 들어봐” 하고 들려주는 순간이 올 것 같거든요.

── ✦ ──
딸에게 악기를 준다는 건, ‘표현의 언어’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일
딸은 종종 감정이 먼저 오는 사람 같아요.
기분이 좋으면 노래가 나오고, 신나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서운하면 말보다 표정이 먼저 바뀌고요.
그럴 때 악기는 말이 아닐 수 있어요.
기분이 말로는 설명이 안 될 때,
괜히 울컥할 때,
혹은 너무 기뻐서 몸이 먼저 움직일 때
악기는 ‘표현의 길’이 하나 더 생기는 거잖아요.
저는 우리 딸이 커서
누군가의 기대만 따라가는 사람이기보다는,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꼭 음악을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마음을 다루는 도구 하나를 어릴 때부터 가질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좋은 선물일 것 같더라고요.

── ✦ ──
사실은 내 마음의 ‘아쉬움’도 조금 섞여 있었다
여기서 솔직해지면, 악기를 고른 이유에는
제 개인적인 마음도 조금 들어 있어요.
저도 어릴 때 악기를 배웠던 적이 있거든요.
근데 그게 취미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그때 좀 더 해볼 걸.”
이런 아쉬움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악기 근처를 맴돌아요.
배우고 싶어서 기웃거리고,
사고 싶어서 검색하다가,
결국 “나중에”를 핑계로 뒤로 미루고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딸에게 악기를 선물하는 날은
아이에게만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나에게도 같이 시작할 기회일 수 있겠다고요.
다섯 살 딸이랑 같이 배우면
우리는 ‘아빠와 딸’이 아니라
한동안은 ‘같이 서툰 사람 둘’이 될 수 있잖아요.
그 시간이 저는 참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나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서툴러도 같이 웃으면서, 조금씩 ‘우리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시간.
그래서 다섯 살 딸에게 주고 싶은 건
어쩌면 악기 자체가 아니라
그 악기가 만들어주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어린 시절 선물 중에 물건은 사라졌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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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아빠 '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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